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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사설

[건축 리포트] 찰나의 순간을 영원 속에 담아두는 물방울의 향연,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2018-08-28 15:45:18  |  아키타임즈 

 

 

 

그에게 물방울을 그리는 것은 모든 것을 무()로 돌려보내기 위한 행위다. 미술관도 그의 작품에 내재되어있는 의미처럼 하나의 물방울이 되어 인위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회()를 형상화하고 있는 건축물의 모습이 작가의 작품세계와도 이어진다. ‘최소의 건축으로 구상된 김창열 미술관은 주변 지형과도 자연스러운 연결을 추구하고 있다. 

 

 

  

 

 

제주시 한림읍에 위치한 김창열미술관은 올해로 개관 2주년을 맞았다. 미술관은 김창열 화백이 1957년부터 2013년까지 그의 대표작품 220점을 제주특별자치도에 무상 기증하여 세워졌다. 그의 작품을 통해 현대 미술사와 세계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김창열 예술의 가치를 재발견해나가며 제주 지역 사회에 공공 전시공간으로서 기여하고자 하는 취지가 담겨있다.  

   

  

 


일평생 물방울만을 그려 온 것으로 유명한 김창열 화백은 작품마다 배경만 달라질 뿐, 물방울이라는 하나의 매개체를 통해 작품 세계를 구현해왔다. 물방울은 점점 신문지로, 책으로 흡수되어 텍스트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어느 경우에는 잉크를 번지게 만들고 어느 경우에는 찢어지게까지 만든다. 물방울은 텍스트가 견딜 수 없는’, ‘대처할 수 없는그 무엇이자, 필연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극의 존재이다. 텍스트의 세계가 견딜 수 없는 타자적인 것’, 텍스트의 세계 위에 떨어져 텍스트를 확대시키는 것, 텍스트를 해체시키는 것, 모든 언어를 상대화하는 것, 세계와 언어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필연적인 사건, 그 사건은 바로 텍스트 위에 떨어진 물방울이자, 일생동안 모든 것을 무()로 돌려보내기 위한 처절하고도 간절한 행위인 것이다.

 

 

  

 


그의 작품의 주연은 오직 물방울뿐이다. 이 물방울을 통해 김 화백은 인생에 드리우는 모든 상처와 고통으로 점철된 트라우마를 용해 시켜 분노, 공포 모든 것을 허로 돌리는 평안과 평화의 세계를 이룩해냈다. 물방울의 모습은 일정하지 않고 모두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화면 위에 총총히 맺혀있거나 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거나, 금방이라도 흘러내려 표면으로 스며들 것만 같은 찰나의 순간이 캔버스에 박제되어있다. 다채로운 물방울의 향연 속에서 펼쳐지는 작품의 세계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삶의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허()로 돌리는 것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살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감정의 원인과 형태에 따라 개인이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있고 혹은 타인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경우도 생긴다. 어떤 방법으로든 결국 고민의 끝은 고민을 잊어버리는 것, 지워버리는 것이 아닐까. 김 화백은 그러한 욕구를 물방울에 투영시켜 찰나의 순간들을 허로 돌렸다.

 

 

  

 

 

살아온 해가 늘어날수록 깨닫는 것 중 하나는 고민이란 해결할 방법을 몰라서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언젠가 해결될 거라는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딘가에 그 믿음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라 여겨 그 믿음을 찾기 위해 기꺼이 떠안고 있는 것. 그러니 김 화백이 그린 물방울도 그에게는 일생동안 믿음을 찾아 나선 단 하나의 몸짓이기도 하다. 나의 고통과 슬픔이 언젠가 소멸될 것이라는 간절한 믿음, 그 외로운 마음을 가지고 김 화백은 단 하나의 몸짓으로 긴 여정을 지나왔다. 그러니 단순한 물방울의 형상에도 깊은 울림이 깃들어있는 것이다.

 

사회가 급변함에 따라 대부분의 절차가 간단명료해지고 있다. 어쩌면 고민이란 것도 더이상 끌어안고 있을 필요가 없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나만의 몸짓을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설령 그 몸짓이 쓸데없을지언정, 내 안에서 발화되어 삶의 의미를 만나는 사유의 장이기 때문이다. 곧 사라질 듯한 찰나의 물방울을 영원 속에 잡아두는 일, 이는 곧 불교가 말하는 공(空)의 세계이자 도교가 말하는 무(無)의 세계관으로 통한다.

    

 

  

 

 

김창열 화백(평안남도 맹산, 1929~) : 일생동안 물방울만을 소재로 그림을 그린 물방울 화가김창열 화백은 한국전쟁 때 월남하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미술교사, 이봉상 화백의 화실에서 조수로 일하며 한국현대미술가협회를 창립하여 수차례 전시회를 열었다. 1969년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던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로 근교의 팔레조에 위치한 마구간에 자리를 잡고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국내외 화단의 주목을 받아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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